본문 바로가기
즐기기/책

[평균의 종말]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내 인생에 혁명과도 같은 책.

by 달콤말 2019. 12. 25.
반응형

평균적 인간을 바탕으로 삼아 설계된 시스템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ㅡ 미군의 전 부문에서 평균치를 중심으로 표준화할 것이 아니라, 장비를 다양한 체격에 맞추도록 명하는 지침이 발표됐다.
ㅡ 군에서 그런 파격 변화를 그토록 신속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런 시스템 변화가 지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시급한 문제에 대한 실용적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


평균이라는 측정 방식은 거의 언제나 틀리다.
평균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인간의 특징, 극도의 다양성.
평균적인 신체 치수, 평균적인 재능, 평균적인 지능, 평균적인 성격 같은 건 없다.


  개개인성(individual)의 원칙  

ㅡ 들쭉날쭉의 원칙
ㅡ 맥락의 원칙
ㅡ 경로의 원칙

자신만의 진정한 고유성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삶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당신의 개개인성을 온전히 활용할 방법까지 알려줄 것이다.

 들쭉날쭉의 원칙 

들쭉날쭉?
1. 다차원으로 이루어짐
2. 차원들 사이에 관련성이 낮음

체격, 재능, 지능, 성격, 창의성... 인간의 모든 중요한 특성이 들쭉날쭉.
특히 재능!
재능의 평가에서 일차원적 방식을 취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더보기

아버지는내 쪽으로 다가와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분석적 추론 영역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털어놓으며 내가 문제를 푸는 방식을 보여드렸다.
"그런 식으로 풀면 문제를 거의 머릿속으로 풀어야겠는데." 아버지가 지적했다.
"당연하죠. 이런 문제는 그렇게 풀어야 하니까요." 
나는 그렇게 대꾸하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내 지도 강사가 그런 방식으로 만점을 받았고 나와 같이 배우는 시험 대비반의 다른 대다수 수강생들도 그 방식을 활용해서 백분위수 80번째의 성적을 받았다고요.' 

"하지만 너는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 별로 뛰어나지 않잖니, 굳이 작업 기억을 요구하는방식으로 문제를 풀 이유가 있을까?" 
내가 기하학을 잘한다는 점을 꿰고 있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넌 시각적 사고가 아주 뛰어나니까 시각적 사고에 의존하는 문제 풀이 방법을 활용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작업기억 : 정보들을 일시적으로 보유하고, 각종 인지적 과정을 계획하고 순서 지으며 실제로 수행하는 작업장으로서 기능하는 단기적 기억

재능의 들쭉날쭉성, 즉 우리 아이들, 직원들, 학생들의 들쭉날쭉한 측면을 인정할 줄 알게 되면 그들의 미발굴된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런 강점을 제대로 활용하도록 이끌어주는 동시에 약점을 간파해 그 약점을 개선하도록 도와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실제로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도움을 줬다. 

한편 자기 자신의 들쭉날쭉성을 인식하게 되면 재능에 대한 일차원적 관점에 사로잡혀 자신의 역량을 제약당할 위험이 그만큼 줄어든다. 내가 만약 GRE를 망쳤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 시험이 필연적으로 전해주는 메시지에 따라) 스스로를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결론 내리면서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떨어뜨렸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깨닫고 우리의 장래성에 대한 자의적이고 평균 중심인 견해의 굴레에 속박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들쭉날쭉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맥락의 원칙 

오직 '특정 맥락 내에서의' 일관성만 있을 뿐이다.  (유이치 쇼다)

개개인의 행동은 특정 상황과 따로 떼어서는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으며
어떤 상황의 영향은 그 상황에 대한 개개인의 체험과 따로 떼어서는 규명될 수 없다.


행동은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독자적 상호작용'을 통해 표출된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평균적 경향이나 '본질적 기질'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길을 잃기 쉽상이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맥락에 따른 행동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더보기

학교 선생님들이 내 행동의 맥락을 이해하려 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나에게 공격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대신, 또 '문제아'의 낙인을 찍는 대신 도움이 돼줬을 텐데. 왜 내가 그런 맥락에서 말썽을 피우는지를 헤아리려 애썼다면, 내 성격의 본질을 간파했다고 간주해버리지 않고 담임교사에게 귀띔을 하거나 나를 다른 반으로 옮기는 식으로 중간에서 조정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이후에 웨버주립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나름대로 간파해낸 나 자신의 상황맥락별 기질을 활용해 수업에 임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중에서도 신입생 시절에 아주 유용했던 한 방법은 나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얼굴을 아는 학생들이 있는 강의는 피했던 것이다. 그런 특정 맥락에 놓이면 내가 장난꾸러기처럼 굴게 될 것 같아서다. 또 교수님 스타일이 나에게 잘 맞지 않으면 해당 과목은 중도에 그만뒀다. 

나는 특정 맥락에서의 내 행동 방식을 파악한 덕분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경로의 원칙 

1.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른 속도로 발전한다.
2. 인간의 발달에는 보편적인 고정 순서가 없다. 성장하거나 학습하거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누구나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그런 일련의 단계 따위는 없다.

"발달의 사다리는 없다. 사다리라기보다는, 우리 각자가 저마다 발달의 그물망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각각의 새로운 단계마다 우리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이 온갖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다는 얘기다."
ㅡ 커트 피셔 ㅡ

인간의 발달은 (생물학적 발달이든, 혹은 정신적· 도덕적· 직업적 등등의 발달이든) 그 종류를 막론하고 단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라는 것이 없으며 이 사실은 개개인성의 세 번째 원칙인 경로의 원칙에서 근본을 이루는 토대다.

경로의 원칙은 다음의 2가지 확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첫 번째,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는, 그리고 그 어떤 특정 목표를 위한 여정 역시도 똑같은 결과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이며 그 길은 저마다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 ㅡ 등결과성equfinality
두 번째,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경로는 당신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된다.

더보기

이정표 없는 길을 걷는다는 것

다음은 빈켄부르크가 「사이언스 커리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내용이다.

"주목해서 인식해야 할 부분은 패턴은 달라도 모두가 우수한 성취를 이루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길은 하나만이 아닙니다. 7명의 아이를 키우는 중이든 병든 부모 한 분을 수발하고 있든, 또 하루 24시간 연구실에 처박혀 있든 간에 언제든 뛰어난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특정 목표에 이르는 경로는 (그 목표가 읽기 습득이든 최고 실력의 운동선수든 회사의 운영이든 간에) 저 밖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걸어갔던 여행자들이 닦아놓은 숲속의 보행로 같은 경로가 있다고 여기며 삶에서 성공하는 최선의 길은 그런 잘 닦인 보행로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로의 원칙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자신만의 경로를 처음으로 내고 그 길을 닦으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나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 따라 매번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능성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모든 참가자의 뇌 지도가 평균적 뇌 지도와 비슷한 모양을 나타내지 않았다. 밀러의 분석 결과는 길버트 대니 얼스가 손의 모양을 조사하면서 얻은 결과와 유사했으며, 차이점이라면 이번에는 연구 대상이 손발 같은 신체가 아니라 생각, 감정, 인격의 요람인 한 기관이라는 점뿐이었다. 
밀러는 이런 결과 앞에서 당황스러웠다. 평균적 뇌 기반의 연구법을 떠받치는 핵심 가정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의 뇌가 평균적 뇌와 아주 비슷해야 옳았다. 게다가 신경과학계에서는 일부 사람의뇌는 평균적 뇌와 같아야 한다는 확신이 퍼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밀러의 실험에서는 평균적 뇌와 미미하나마 비슷한 뇌조차 없었다.

"각 개인의 기억 시스템이 저마다 독특한 신경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패턴의 차이가 미묘하지 않고 '현저하게' 두드러진다."

평균적인 뇌 라는 것은 없다.


 평균주의자 averagarian 
: 평균을 활용해 개개인을 이해하는 모든 이들. (과학자, 교육가, 관리자, ...)

유형화와 계층화가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하고 마땅한 일처럼 여겨지게 되면서 이제 우리는 그런 판단이 어떠한 경우든 예외 없이 판단을 받는 사람의 개개인성을 묵살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더 이상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케틀레 이후 15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19세기의 그 시인들과 의사들이 우려했던 그대로 모두 평균주의자가 돼버렸다.


 비극의 시작, 아돌프 케틀레(1796~1874) 

케틀레는 평균적 인간의 숨겨진 얼굴의 정체를 밝히고 싶은 열정에 들떠 평균 키, 평균 체중, 평균 얼굴빛 등등 자료의 입수가 가능한 인간 특징에 대해 닥치는 대로 모조리 평균을 냈다. 평균 결혼연령, 평균 사망 연령도 계산했다. 연간 평균 출산, 평균 빈곤인구. 연간 평균 범죄 발생 건수, 평균 범죄 유형, 평균 교육 수준, 심지어 연간 평균 자살률까지도 계산했다. 그런가 하면 케틀레 지수Ouetelet nder (현재의 체질량지수 BMI에 해당한다)를 고안해 평균적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남성과 여성의 평균 BMI를 산출하기도 했다. 케틀레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평균값 모두는 유일한 참 인간, 즉 평균적 인간의 숨겨진 특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케틀레는 평균적 인간을 우러러 받든 반면 평균에서 벗어난 불운한 개인들에 대해서는 그에 맞먹는 혐오감을 가졌다.

케플레가 착안해낸 이 평균적 인간이라는 개념은 바야흐로 평균의 시대age of Average 를 열었다. 다시 말해 평균이 정상이 되고 개개인이 오류가 되며 과학이 정형화에 정당성을 각인시켜주는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런 식의 가정에 따라 결과적으로 공군에서는 평균적 조종사에 맞춰 조종석을 설계하게 됐고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의 나의 지도 교수들은 평균적 뇌의 지도를 해석하는 요령을 가르치게 됐다. 수 세대에 걸쳐 부모들은 자녀가 평균 기준에 따라 성장하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게 됐고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건강이나 사회생활이나 경력이 평균에서 너무 크게 이탈할 때면 불안감을 느끼게 됐다.


 '상위 1%'란 개념의 시초,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의 계층개념 

케틀레 식대로 말하면 당신이 평균보다 50퍼센트 더 빠르든 50퍼센트 더 느리든 간에 그것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에 속하든 둘 다 평균에서 이탈한 것은 똑같다. 반면 골턴의 입장에서 보면 평균보다 50퍼센트 더 빠른 사람은 50퍼센트 더 느린 사람보다 우월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똑같지 않다. 즉 더 빠른 사람이 더 높은 계층에 든다.
골턴은 인간을 최하위 계층인 '저능층 Imbecile'에서 부터 중간 계층인 '평범층 Mediocre을 거쳐 최상층인 '우월층 Eminent'까지 14가지 계층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는 평균의 의미에 획기적 변화를 일으켜 평균을 정상의 개념에서 평범함의 개념으로 탈바꿈시켰다.


 표준작업량과 성과급제의 도입,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 (1856~1915) 

테일러는 평균주의의 중심 지침, 즉 개개인성의 등한시 개념을 채택함으로써 업계의 비효율성을 체계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과거에는 인간이 최우선이었다면 미래에는 시스템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

테일러에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하려는 근로자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실제로 테일러는 1918년에 한 잡지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로 경각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독창적 사람들이 숱하게 부딪쳐 좌초하는 암초가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독창적 재능에 탐닉하는 것이다. 평균적 인간이 이미 순탄하게 잘 활용하고 있는 기존의 기계나 방식이나 공정을 교체하기 위해 파격적이도록 새로운 기계나 방식이나 공정을 만들려 한다면 그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미국의 공장들은 테일러의 표준화 원칙을 받아들이면서 부랴부랴 작업 규칙을 게시하고 표준 작업 절차를 담은 책자를 발간하고 작업 지시 카드를 발행하는 식으로 직무 수행에 반드시 따라야 할 방식을 제시했다. 한때 창의적인 장인으로 추앙받던 근로자들은 이제 자동인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현대 기업들에서는 표준화(standardization)가 테일러의 초반 제안 형식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형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테일러는 표준화와 관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1911년에 발간한 자신의 저서 [과학적 관리의 원칙 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에 정리했다." 이 책은 국내외에서 경영 부문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며 12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됐다. 이 책의 출간 직후 과학적 관리법, 즉 흔히 불리는 명칭대로 '테일러주의 Taylorism'가 전 세계 산업계를 휩쓸었다.

기업 소유주들은 기업 구조의 재편성에 나서서 부서와 하위 부서를 만들어 각 부서마다 테일러주의적 '관리자'를 수장으로 두며 조직도를 새로운 초점으로 삼았다. 또한 인사부와 인사개발부를 설치해 직원의 발굴·채용· 직무 배치 업무를 맡겼다. 테일러주의의 영향으로 기획실, 능률성 향상 전문가, 산업 조직 심리학, 시간연구 공학이 생겨나기도 했다.

사고와 기획 업무가 현장 업무와 별개로서 분명하게 분리되었다.

한편 아시아의 여러 집단주의 문화에서 과학적 관리를 서구 문화권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게 적용시키면서 미쓰비시와 도시바 같은 기업들은 표준화와 사원-관리자 분리 원칙에 따라 철저히 탈바꿈했다. 1961년 테일러의 아들이 일본을 찾았을 당시, 도시바의 임원들은 그에게 펜이든 사진이든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이라면 무엇이건 달라고 간청하기까지 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과학적 관리법은 모든 산업국가에서 가장 지배적인 기업 조직의 원칙으로 남아 있다. 물론 기업들은 다들 그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러 분야에서 테일러주의가인종차별주의나 남녀차별주의 못지않게 불명예스러운 내력을 얻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잘나가는 기업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직원들의 개개인성을 등한시하는 개념을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ㅡ시스템에 따를 근로자들과 시스템을 규정할 관리자들의 구분에 기초한 사회라면 그 사회는 누가 사원이 되고 누가 관리자가 될지를 어떤 식으로 결정할까? 

테일러주의자들은 아이들을 모아 산업체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근로자로 성장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전체 교육 시스템의 구조를 과학적 관리의 중심 신조에 따라 재편하는 일에 착수했다. 즉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평균 중심으로 표준화하기에 나섰다. 전국 곳곳의 학교들이 '게리 플랜Gary Plan'을 채택했다. 그 원조격인 인디애나주의 산업화 도시 지명을 따서 이름 붙여진 게리 플랜은 학생들을 (성적이나 관심사나 적성별이 아닌) 나이별로 나눠놓고 그렇게 분리된 그룹별로 교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표준화된 시간 동안 수업을 받게 하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이 미래의 직장생활에 정신적 준비를 갖추게 하려는 차원에서 공장의 종을 흉내 낸 학종을 도입하기도 했다.


 성공과 실패도 타고난 팔자?, 생물학적 학습이론, 에드워드 손다이크 (1874~1949) 

모름지기 학교란 어린 학생들을 각자의 재능에 따라 구분해 저마다에게 맞는 삶의 지위를, 즉 관리자형일지 근로자형일지, 탁월한 리더형일지 있으나 마나한 존재일지를 효율적으로 정해 그에 따라 교육 자원을 제대로 배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손다이크의 교육관이었다. 또한 “평등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 를 좌우명으로 삼으며 우등생을 가려내 이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붓는 것이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교육 기회를 부여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손다이크는 골턴의 계층 개념은 물론, 한 가지 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다른 대부분의 일에도 재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에도 공감을 했다. 골턴의 이런 신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신의 생물학적 학습이론을 꺼내놓기도 했다. 말하자면 학습 속도가 빠른 뇌를 타고난 사람들이 있으며 이런 사람들은 학교에서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도 성공을 거두는 반면, 둔한 머리를 타고난 불쌍한 사람들은 평생 고생할 팔자라는 이론이었다.

손다이크에게는 학교의 목표가 모든 학생을 똑같은 수준으로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타고난 재능 수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었다. 교육 역사상 가장 영향력 높은 인물에 들었던 사람이 교육은 학생의 실력을 변화시키는 데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으며 따라서 우월한 두뇌를 타고난 학생들과 열등한 두뇌를 타고난 학생들을 구분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한정돼 있다고 믿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더보기

빠를수록 더 똑똑하다는 거짓말

더 빠른 것이 더 똑똑한 것이라는 가정을 우리 교육계에 도입시킨 장본인은 에드워드 손다이크다. 손다이크는 학생들의 학습 속도가 학생들의 기억력과 결부돼 있으며, 또 기억력은 학교생활과 직업생활에서의 성공과 결부돼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빨리 배우는 사람은 기억력도 좋다." 손다이크는 이런 결부론의 근거로 학습의 차이는 뇌의 연결성 형성 능력의 차이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했다. 
손다이크는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평가하는 한 방법으로 수업, 숙제, 시험의 시간을 평균적인 학생이 끝마치는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표준화하도록 권고했다. 현재까지고 우리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시험이나 과제를 내줄 때 추가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배정된 시간 안에 다 마칠 만큼 빠르지 못하면 교육상의 평가에서 그만큼의 벌이 주어져야 한다고 당연시한다.

하지만 속도와 학습능력이 관련이 없다면? 아주 부당한 교육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얘기가 된다.

속도가 곧 능력은 아니라는 사실과 전반적으로 빠르거나 더딘 학습자는 없다는 사실은 사실상 블룸의 선구적 연구가 이뤄지기 몇십 년 전에 이미 밝혀진 바 있으며, 그 이후로도 다른 학생들과 다른 내용을 활용해 수차례 같은 조사가 반복됐으나 그때마다 어김없이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학습 속도를 학습 능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반박의 여지 없는 오류다. 

물론 이러한 연구를 통한 논리적 결론은 명백할 뿐만 아니라 유감스러운 부분도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 고정된 속도의 학습을 강요함으로써 수많은 학생의 학습 능력과 성취력을 인위적으로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속도의 조절을 하용하다면 대다수 사람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시스템 구조는 개개인성을 고려해 설계되지 않으며, 학생들 모두의 잠재력과 재능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


 테일러주의화와 학교의 표준화 및 등급화 시행의 명암 

그렇다고 해서 테일러주의화와 학교의 표준화 및 등급화 시행이 무슨 실패작이라도 된다는 주제넘은 주장을 펴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실패작도 아니다. 사회가 평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기업들은 번창을 누렸고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한 상품을 구매하게 됐다. 테일러주의는 사회 전반적으로 임금을 인상시켰으며 어쩌면 지난 20세기의 그 어떤 경제 발전기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빈곤에서 구제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대학 지원자들과 구직자들이 평균화 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족벌주의와 연고주의가 줄어든 한편 불리한 배경 출신의 학생들에게 전례 없는 수준의 출세 기회가 부여됐다. 사회의 자원 배분을 우등생에게 집중시키고 열등생에게는 배제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믿었던 손다이크의 엘리트주의 신념은 비난받을 만하지만 그는 부와 상속된 특권이 학생의 기회를 결정짓는 요소가 돼서는 안된다는 신념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평균주의는 우리에게 대가를 치르게 했다. '노르마' 닮은꼴 찾기 대회가 그러했듯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학교와 직장생활과 삶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의 편협한 기대치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려고 기를 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되 더 뛰어나려고 기를 쓴다. 영재들이 영재로 불리는이유는 다른 모든 학생들과 똑같은 표준화 시험을 치르지만 더 뛰어난 성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위권의 입사 지원자들이 심사에서 호감을 얻는 이유는 다른 모든 지원자들과 똑같은 종류의 자격을 가지고 있지만 단지 더 뛰어나서다. 우리는 개개인의 존엄을 상실했다. 우리의 독자성은 성공에 이르는 길에 놓인 짐이거나 장애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한눈팔기 쯤으로 전락해버렸다.


 평균주의의 치명적 결함, 에르고딕 스위치의 속임수, 피터 몰레나(1946~) 

평균주의의 치명적 결함은 개개인성을 무시한 채로 개개인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모순된 가정에서 시작된다.

에르고딕 이론에 따르면 그룹평균을 활용해 개개인에 대해 예측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데 그러려면 먼저 다음의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 그룹의 모든 구성원이 동일할 것.
2. 그룹의 모든 구성원이 미래에도 여전히 동일할 것.
물론 굳이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기체 분자 뿐 아니라 사람들 역시 에르고딕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급화와 유형화 같은 기본적인 평균주의 방식의 대부분은 인간이 냉동 클론이라는 식의 가정을 취했다.
몰레나는 이런 가정을 에르고딕 스위치(ergodic switch)라고 이름 붙였다. 이것은 일종의 지적 '유인술'로 생각하면 된다. 말하자면 과학자, 교육가, 기업 리더, 채용관리자, 의사가 평균주의의 유혹에 속아 개개인을 평균과 비교함으로써 개개인에 대해 뭔가 중요한 것을 알아내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지만 정작 실제로는 개개인에 대해 중요한 것을 모조리 무시하고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케틀레는 이 에르고딕 스위치로 인해 평균적 인간의 존재를 믿게 됐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이 에르고딕 스위치를 통해 평균이 이상에 해당하고 개개인은 오류에 해당한다는 자신의 가정을 정당화하기까지 했다.
응용과학의 150년은 케틀레의 원초적 착각에 의해 이미 예견돼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그 어떤 여성의 몸과도 일치하지 않는 '노르마', 그 어떤 사람의 뇌와도 일치하지 않는 뇌 모델, 그 누구의 생리에도 꼭 들어맞지 않는 표준화 치료 요법, 신용할 수 있는 개개인들에게 불리한 점수를 부과하는 금융 신용 정책, 유망한 학생들을 걸러내버리는 대입 프로그램, 비범한 재능을 과소평가하는 고용 정책 등이다.

평균주의는 우리의 사고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제한된 패턴에 따르도록 유도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수많은 평균에 비교해 평가하도록 조장하며, 아니 강요하며, 우리에게 그 정당성을 끝도 없이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직업적 성공을 판단하기 위해 자신의 급여를 평균 급여와 비교해야 한다. 학업성과, 결혼시기 등등을 평균과 비교한다. 

하지만 일단 평균주의식 사고에서 자유로워지면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 차츰 직관적인 일이 됐다가 더 지나면 당연한 일로 굳어질 것이다.


평균의 시대를 특징짓는 2가지 가정:
1. 평균이 이상적인 것이며 개개인은 오류라는 케틀레의 신념,  
2. 한 가지 일에 탁월한 사람은 대다수의 일에서 탁월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골턴의 신념.


그러면 개개인의 과학이 내세우는 주된 가정: 개개인성이 중요하다는 신념.
1. 개개인은 오류가 아니며
2. 개개인을 (재능, 지능, 인성, 성격 같은) 가장 중시되는 인간 자질에 따라
   단 하나의 점수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평균주의자들이 활용하는 수학이론은 Statistics로 통한다. 정적인 값(static value)의 수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터 몰레나(1946~)와 동료 연구원들은 개개인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Dynamic Model이라는 가변적이고 비선형적이며 역동적인 값의 수학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interindividual variation 이 아니라, intraindividual variation 기반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특정 주제별로 분석 및 추정)

  • 평균주의의 연구 방법 : 종합분석

  • 개개인 우선 연구 방법 : 분석종합

먼저 개개인별 패턴을 살펴본 다음 이를 취합해 종합적 통찰을 얻어낼 방법을 찾는다. 

개개인 우선 접근법에서의 한 가지 난관은 막대한 양의 자료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지금의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 막대한 양의 개개인 자료를 수집 저장 처리하는 것쯤은 아주 편리하고 시시한 일이 됐다. 

단지 부족한 것은 이를 사용할 사고방식 뿐이다.


 평균주의적 사고 - 일차원적인 사고, 본질주의, 규범적 사고 ===> 오류 

우리를 일련의 특성에 따라 평가하는 검사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어떤 사람의 성격에 대한 본질을 규정하고 있는 그런 특성들을 알면 그 사람의 '진짜' 정체성을 꿰뚫을 수 있다는 우리의 뿌리깊은 확신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다정한지 쌀쌀한지, 게으른지 부지런한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의 여부는 본질적으로 그 사람의 영혼 깊숙이 은밀하게 내재돼 있어서 이런 성격 규정이 그 어떤 환경이나 업무에서든 진가를 발휘하기 마련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믿음을 가리켜 본질주의 essentialist thinking라고 한다. 

본질주의 사고는 유형화의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성격 특성을 알면 그 사람을 특정 유형으로 분류해도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누군가가 특정 유형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면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결론지을 수 있다고 여긴다. 


정상적인 성공 경로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의 전개를 이런 평균 중심적 기준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어 다니기 같은) 지표나 (독립해 마케팅 대행업체 운영하기 같은) 직업상의 목표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정상적인 시간이 항시 대기 중인 스톱워치처럼 우리 뇌리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아이가 기기 시작하는 시기가 정상보다 늦거나 동창생이 이른 시기에 마케팅 부장이 되면 자신이 (자신의 아이가) 뒤처진 듯한 기분에 휩싸이기 일쑤다. 규범적 사고라는 정신적 장벽을 극복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인간의 발달 경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발달 경로에 하나의 표준 경로라는 건 없다.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가 있다는 믿음은 아동 발달 분야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을 속여왔다.


우리가 올바른 길에 서 있는지를 판단할 유일한 방법은 그 길이 우리의 개개인성과 얼마나 잘 맞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우수성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유용한 길이 어딘가에 있지만 그 길이 어떤 형태일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길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했다.

수강할 과목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들쭉날쭉성(지루함을 잘 견디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흥미가 끌리기 된 내용에는 초집중력을 발휘)을 이해해야 했고, 내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만한 맥락을 알아야 했다. 내 들쭉날쭉한 측면과 상황 맥락별 기질을 이해한 덕분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독자적 경로를 정할 수 있었다.

일단 개개인성의 원칙들을 잘 이해하면 당신의 삶에 통제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다. 당신 스스로를 평균 점수가 말해주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개개인성을 진지하게 고려하면, 즉 개개인성을 포용하도록 기업을 구상하면, 혁신은 조직망 구석구석 곳곳에서 수시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모든 직원이 자주적 주체자로 거듭나 자신의 직무를 수행해 회사에 이바지할 최상의 방법을 파악하면서 직무에 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린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무슨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모든 직원이 회사에 밥값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닝 스타는 모두에게 밥값을 할 자유재량을 제공해줍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때 가장 행복해집니다. "


기존 시스템의 평균주의 구조에서 학생 개개인을 중요시하는 교육 시스템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개념을 채택해야 한다.

* 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 성적 대신 실력의 평가
*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 허용하기

위의 3가지 개념은 개개인성의 원칙과 조화될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이 경력의 진로를 정해서 적절한 교육을 받도록 도와줄 만한 교육 시스템을 세우는 데 청사진을 제시해준다.

맞춤이 기회를 만든다.
평균적인 사람 같은 것이 없다면 평균적으로 평등한 기회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평등한 맞춤'만이 평등한 기회의 밑거름이 된다.

우리는 올라야 할 이런 인위적이고 자의적이며 무의미한 디딤대를 올려다보면서 디딤대를 제대로 딛지 못할까 봐, 일차원적 사다리를 온 힘을 다해 올라가야만 주어지는 그런 기회들을 못 얻게 될까 봐 초조해한다.
우리 자신이나 아이들이 남들과 '다른' 사람으로 분류되면 학교생활에서 성공할 가망이 없어지고 사다리의 낮은 곳에서 살아갈운명에 놓일까 봐 불안해한다. 상위권의 일류 학교에 들어가 높은 성적을 받지 않으면 들어가고 싶은 회사의 고용주들이 우리를 거들떠도 안 볼까 봐 걱정한다. 성격 테스트에서 잘못 대답하면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현재 우리는 다른 사람들 모두와 똑같이 하되 더 뛰어나길 요구하는 한편 아메리칸 드림을 주위 사람들과 '비교'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옹졸한 꿈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

자기 나름의 관점에 따른 최고의 자신이 되고자 하는 꿈

자신이 정한 기준에서의 훌륭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꿈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그 꿈의 실현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이제 더는 평균의 시대가 강요하는 속박에 제한당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시스템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개개인성을 중요시 함으로써 평균주의의 독재에서 해방돼야 한다. 우리 앞에는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으며 그 시작점은 평균의 종말이다.

반응형

댓글